우리 공화국이 걸어온 70여년의 자랑찬 력사에는 인민적인 보건제도를 마련해주시고 빛내여주신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력사가 깃들어있다.
해방전 우리 나라에는 관영병원 9개, 침대수는 450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의사들을 다 합친다 해도 몇백명에 불과했다.
이 얼마 안되는 치료시설마저도 거의나 도시에 집중되여 있었기때문에 농촌주민들은 병치료를 받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안에 보건국을 내오도록 하시여 보건사업에 대한 국가적지도를 강화하고 도, 시, 군에 이르는 정연한 보건행정기구를 조직해주시였다.
련이어 새로운 인민적인 보건법규들을 제정공포하고 국가적투자를 늘여 국가보건기관들을 건설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국가병원수는 해방전의 9개로부터 58개로서 6배이상 늘어났고 소재지들에는 구급소가 새로 조직되였으며 2개의 전염병원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국영보건기관들이 건설되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1월에 전반적무상치료제가 실시되고 1960년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7차회의에서 완전하고도 전반적인 무상치료제가 선포되여 외진 두메산골과 어촌마을에 이르기까지 의사담당구역제에 따라 호담당의사들이 담당세대들에 대한 예방치료와 위생선전, 접종사업 등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체계가 세워졌다.
오늘 우리 사회주의보건은
최근 몇해사이에만 하여도 옥류아동병원과 류경치과병원, 류경안과종합병원 등 현대적인 의료봉사기지들과 보건산소공장, 평양치과위생용품공장이 련이어 일떠서고 묘향산의료기구공장, 평양제약공장을 비롯하여 많은 보건기관들이 현대화되였으며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먼거리의료봉사의 리용분야가 더욱 확대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하고있다.
지난 5월에 발생하였던 돌발적인 보건위기상황이 최단기간내에 역전되고 90여일만에 방역대승으로 이어지게 된 비결은 전적으로 인민의 생명건강을 굳건히 지키는것을 제일국사로 내세우시는
오늘 우리 인민은 자기의 실생활체험을 통하여 우리 나라 보건제도의 고마움을 심장으로 느끼고있으며 우리 제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가슴끓이고있다.(끝)